SERIES PROGRESS
PART 01 — 입스의 그늘, 선수들의 고통 1 / 5
ABSTRACT · 연구의 시작점

“본 페이지는 가톨릭대학교 박사학위 연구(박준화, 2018)에서 진행된 9명 운동선수 질적 분석 자료의 첫 장면입니다. 운동선수 52명을 처치집단 25명·통제집단 27명으로 나누어 비교한 효과 검증 연구에서 7개 변인 모두 p<.001의 통계적 유의성과 큰 효과크기(partial η² .24~.60), 그리고 84%의 개선율을 입증한 후,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9명 선수의 직접 경험을 통해 들여다본 자료입니다. 본 1편은 변화가 시작되기 이전, 입스가 9명 선수의 인지·정서·신체·운동제어를 어떻게 흔들어 놓았는지에 대한 다섯 장면을 담습니다.”

모든 선수가 겪는, 그러나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하는 그것

입스(yips)란 무엇인가. 본 글에서 다루는 입스(yips)는 갑작스런 근육경련이나 경직, 또는 자동화된 동작이 갑자기 수행되지 않는 운동제어 문제를 가리킵니다. 학술 용어로는 수행붕괴(choking under pressure)의 한 형태이며, 골프 종목에서 처음 명명되어 지금은 야구·축구·펜싱·양궁 등 다양한 종목에서 광범위하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입스'로 용어를 통일해 사용하겠습니다.

운동선수 입스 — 골프, 탁구, 테니스 종목별 시합장의 고통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인비 선수는 한때 4년 동안 입스의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세계일보, 2013). 영국의 탁구 챔피언 Syed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겪은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가능한 최악의 순간의 문을 열어주는 심리적인 재앙과 같은 경험이었다. 나는 다시는 심리적으로 온전해질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테니스 챔피언 McEnroe는 더 단호한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입스를 경험한다.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선수들보다 그것을 어떻게 더 잘 대처할 것인지의 문제다."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마저 피해 가지 못하는 이 문제는 결코 일부 선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프로 골프선수의 30%가 입스로 선수 경력에 중대한 위협을 받고 있고(Sachdev, 1992), 국내 아마추어 골프 선수의 45%가 입스를 경험합니다(이현우, 2006). 단순히 한두 경기를 망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감과 유능감, 운동선수로서의 정체감 자체를 흔드는 문제이며(Hill et al., 2010), 수개월에서 수년을 운동을 쉬거나 결국 운동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Mesagno et al., 2012).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영국의 Hill과 동료들(2011)은 프로 골퍼 6명을 대상으로 10개월간 인지행동 개입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6명 중 4명, 즉 67%가 중도 탈락했고, 그들은 운동을 포기하거나 압박감이 낮은 하위 리그로 옮겨갔습니다. 그렇다고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도핑 문제 때문입니다. 게다가 1년 이상의 장기 개입은 선수 본인이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효과적인 개입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의 그 긴 시간을 선수가 견디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동안의 운동선수 입스 개입의 오랜 현실이었습니다.

임상심리학의 거장 Lazarus(1973)는 임상이 추구해야 할 가장 유명한 원리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절약성(parsimony) —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가장 덜 복잡한 치료법을 활용해야 한다.' 운동선수에게는 빠르고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있는 개입이 절실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에서 진행된 본 박사학위 연구(박준화, 2018)는 그 조건을 충족하는 개입으로 최면상담을 검증했습니다. 운동선수 52명을 처치집단 25명과 통제집단 27명으로 나누어 비교한 효과 검증 연구에서 7개 변인 모두 p<.001의 통계적 유의성과 큰 효과크기(partial η² .24~.60)를 확인했고, 25명 중 21명(84%)에서 개선이 나타났습니다.

본 시리즈 5편은 그 박사학위 연구 중 9명 선수의 직접 경험을 담은 질적 분석 자료입니다. 효과 검증 연구가 '효과가 있다'를 증명했다면, 질적 분석은 '어떻게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보여줍니다. 첫 장면인 1편에서는 변화 이전의 모습을 다룹니다. 9명 선수가 상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입스가 그들에게 무엇을 빼앗아 가고 있었는지 — 다섯 장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FIVE SCENES BEGIN
01
SCENE 01

거리가 멀어 보이고, 시야가 좁아진다

여자 펜싱 선수의 시합장 — 거리감 왜곡과 시야 위축의 순간

압박감이 높아지는 시합 상황에서 선수가 가장 먼저 호소하는 것은 평소와 다른 인지·정서·지각의 변화입니다. 거리감이 왜곡되고, 시야가 달라지고, 평소에는 들지 않던 부정적 생각이 끼어듭니다. 입스가 시작되는 첫 신호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펜싱선수 민지는 졸업 전에 메달을 꼭 따고 싶다는 말로 첫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의욕이 매우 높은 선수였습니다. 1·2학년 때 곧잘 한 성적으로 대학 진학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지만, 고3에 들어와서는 32강을 넘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민지가 들려준 시합장의 풍경은 이러했습니다.

시합할 때는 긴장돼서 상대랑 거리가 멀어 보이고… 내가 작아진 것 같이 느껴져요. 거리에 맞춰서 들어가서 찔러야 되는데 평소보다 거리가 훨씬 멀어 보여서 상대가 찌르기 좋게 거리를 내줄 수 있게 돼요. 긴장이 돼서 질 것 같고, 지면 어떡하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민지 고등학교 펜싱선수

펜싱은 거리 감각이 생명인 종목입니다. 그런데 민지에게 나타난 변화는 단순한 시각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작아진 것 같다"는 표현 — 자기 자신이 작아지는 만큼 상대가 멀어지는, 자기지각의 위축이 시각적 거리감으로 투영되는 현상입니다. 같은 펜싱 종목에 참여한 다른 선수들도 시합이 풀리지 않을 때 "거리가 멀게 보인다"는 동일한 표현을 썼습니다. 종목이 바뀌면 양상도 달라집니다. 축구의 경우는 시야 자체가 좁아진다고 합니다.

축구선수 경민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너무 긴장이 되서 시야가 좁아져요. 그러면 고개를 못 들고 볼만 쳐다보게 돼서 어디로 패스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볼을 자주 뺏기게 되요." 시야가 좁아지면 동료의 위치도, 수비의 위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패스 판단이 무너지고, 결국 볼을 빼앗깁니다.

골프선수 제임스는 인지·지각의 혼란보다는 정서의 혼란을 더 강하게 호소한 경우였습니다. 6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19세 한국계 미국인 아마추어 선수로, 골프를 너무도 잘하고 싶다는 간절함과는 달리 골프 이야기를 할 때의 표정은 그늘져 있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시합장의 마음 상태는 이러했습니다.

연습 때는 거기로 안 갔는데 왜 시합 때는 (공이) 거기로 가나 너무 화가 났고요… 골프공이 하나 이상하게 가면 마음이 어떠냐면요… 누구를 죽인 느낌이에요. 되게 겁이 나고요, 무섭고, 그 순간의 느낌에서 빨리 빠지고 싶은 느낌이 나요.

제임스 19세 아마추어 골프선수

"누구를 죽인 느낌." 한 번의 잘못된 샷에 대해 선수가 이 정도의 정서적 무게를 짊어지면, 다음 샷에서 평정심을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샷에서 또 한 번 잘못이 나오면, 그 무게는 다시 두 배가 됩니다.

거리가 멀어 보이고, 시야가 좁아지고, 한 번의 실수에 누군가를 죽인 듯한 죄책감이 쏟아지는 것 — 이것이 입스를 겪는 선수가 시합장에서 마주하는 첫 풍경입니다. 그리고 이 풍경은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02
SCENE 02

몸이 굳고, 힘이 빠지고,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다

축구 선수의 신체 반응 — 입스로 인한 근육 경직과 호흡 어려움

인지·지각의 혼란만으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입스는 몸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신체 반응이 나타나는데, 단순한 떨림 수준이 아닙니다. 몸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만큼 변화의 강도가 큽니다.

축구선수 경민의 사례는 그 양상을 잘 보여줍니다. 고2 동계훈련 때부터 입스가 심해져, 7년 동안 해 온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에 그는 상담실에 왔습니다.

경기 들어가기 전에 긴장이 많이 되고, 허벅지에 힘이 잘 안 들어가고, 긴장이 많이 되니까 호흡도 빨리 차고 조금만 뛰어다녀도 바로 지치고… 그래도 계속 뛰기는 했는데 상대방이랑 부딪히면 쉽게 몸싸움에서 밀려요, 힘드니까.

경민 고등학교 축구선수

축구는 90분간의 체력 게임입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부터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호흡이 빨리 차오른다면, 90분을 버티는 일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이는 과도한 긴장으로 혈관이 수축되어 심혈관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호흡이 빨라지면서 체력 소모가 가속되는 양상입니다(Dienstbier, 1989; Jamieson et al., 2013).

야구선수 철호의 경우는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포수로 5년 넘게 야구를 해온 선수입니다. 야구가 잘 될 때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지만, 수개월 전부터 가까운 거리에 공을 던지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몸에 힘이 들어가고, 공을 던지려고 하는데 던지는 순간에 힘이 딱 들어가야 되는데 힘이 빠지니까 공이 던져질 수가 없었어요. 손도 가끔 떨리고, 온몸에 땀도 엄청 많이 났고…" 멀리 던지는 동작은 괜찮은데, 정작 가까운 거리, 1루나 2루로 보내는 짧은 송구에서 손에 힘이 빠져버리는 — 야구 포수에게는 결정적인 신체 신호입니다.

신체 차원의 어려움은 종목과 선수마다 양상이 달랐습니다. 골프선수 제임스의 경우는 시합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일어나는 변화를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딱 시합장에 가면 몸이 굳는 것 같고요. 몸이 무거워요, 제가 뻣뻣해가지고. 그럴 때는 발에도 힘이 들어가고, 다리에 힘도 들어가고 머리까지 힘이 들어가고, 목에 힘이 들어가고 그런 게 되게 어려웠어요. 힘을 풀려고 그래도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제임스 19세 아마추어 골프선수

마지막 한 문장이 입스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냅니다. "힘을 풀려고 그래도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의지로 통제하려 할수록 더 통제되지 않는 — 이것이 신체 차원에서 일어나는 입스의 역설입니다. 풀려는 의식적 노력 자체가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 내고, 그 긴장이 다시 근육을 굳힙니다. 9명 선수 중 신체 부위는 달랐지만, 어딘가가 굳거나 힘이 빠지는 신체 어려움을 호소한 선수들이 다수였습니다. 펜싱선수 민지는 "몸이 굳고, 다리하고 손이 굳기도 하고, 손발에 땀이 많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도 느껴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선수 본인이 가장 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자기 몸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 — 그 자체가 다음 차원의 어려움을 불러옵니다.

03
SCENE 03

치기도 전에, 공이 잘못 가는 장면이 보인다

골프 선수의 잘못된 샷 — 입스 부정 사고가 운동제어로 이어지는 순간

사실 입스의 시작은 생각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불안과 긴장이 따라오고, 그 긴장이 곧 몸을 굳게 만듭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생각은 멈추지 않습니다. 9명 선수가 공통으로 호소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합 상황에서 불안을 가중시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떨쳐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골프선수 제임스의 사례에서는 그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시합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자고 밥도 잘 안 들어가는 상태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어려움은 시합장에 들어선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만약에 우측에 좀 위험한 상황이 있으면 예전에 우측에 잘못 쳤던 때 생각이 나고 공이 잘못 날아가는 게 다 보여요. 치지도 않았는데. 그러면 공이 생각했던 대로 거기로 가요. 이게 일부러 하는 건 아닌데 머릿속이 그쪽으로 보고 있어요. 그러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막 지우려고 그래요. 막 진짜 노력을 했거든요. 그래도 막 거기로 가고…

제임스 19세 아마추어 골프선수

치기도 전에 공이 잘못 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보인다는 것 — 이것은 단순한 부정적 사고 그 이상입니다. 이미 시각화된 실패의 시뮬레이션이 운동제어를 직접 좌우하는 현상입니다. 제임스는 평소에도 시각적 기억의 생생함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시합 상황에서는 도움이 아니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습니다. 잘못된 결과가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고, 몸은 그 그림을 따라갑니다. 박사학위 연구는 이 부분의 메커니즘을 다음 단계 분석(2편의 무의식 발견)에서 더 깊이 다룹니다.

축구선수 경민의 불안 사고는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시합에 들어가기 전부터 "실수해서 혼이 나거나 비난받을까봐"라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이 시합 중의 상황 판단을 방해했습니다.

미리미리 생각도 해야 되는데, 어떻게 상황 판단을 순간순간 해야 될지 생각도 잘 안되고… 제가 공격수인데, 상대방 수비가 여유 있게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막 빨리 달려오거나, 그런 좀 다급한 상황에서 상황판단이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럴 때는 감독 선생님들이 뭐라고 막 큰소리로 말하는데 그럴수록 더 생각이 안 나고. 볼을 가만히 세워놓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 앞으로 공격적으로 생각 없이 치고 가다가 뺏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을 뺏기면 감독 선생님들한테 욕도 많이 먹고, 그러면 더 주눅이 들고…

경민 고등학교 축구선수

경민의 머리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시합 중의 빠른 상황 판단, 다른 하나는 실수에 대한 걱정. 그런데 인간의 작업기억은 한정되어 있습니다(Williams et al., 2002). 걱정이 작업기억을 잠식하면, 정작 정보 처리에 써야 할 자원이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비난과 위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욕을 먹으면 주눅이 들고, 주눅이 들면 다시 더 잘못된 판단이 나오는 — 9명 선수 중 팀 종목 선수들이 공통으로 보고한 패턴이었습니다.

04
SCENE 04

연습 때는 되던 것이, 시합에서는 되지 않는다

야구 포수의 송구 입스 — 가까운 거리 송구 운동제어 붕괴

지금까지 살펴본 인지의 혼란, 신체의 어려움, 끊이지 않는 부정 사고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 9명 선수가 가장 큰 고통으로 호소한 것이 있습니다. 반복훈련을 통해 연습 때는 쉽게 할 수 있던 자동화된 동작이, 시합에서 갑자기 수행되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운동제어 그 자체가 무너지는 어려움입니다.

야구선수 철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 어려움의 전형이었습니다.

먼 거리에 공을 던질 때는 괜찮은데 가까운 거리에 공을 던지려면 손에서 힘이 빠져요. 계속 던지려고 해도 안 던져 지니까 던지는 자세만 반복하다가 겨우 던지죠. 2~3번 정도는 주춤하다가 어렵게 겨우 던지는데, 공이 이상한대로 날아가죠. 옆으로 빠지거나 높게 가서 넘어가거나… 공을 10번 던지면 10번 다 계속 주춤하게 되고, 그중에 반 정도는 이상한 대로 공이 빠져요. 너무 안 던져 지니까 창피하고, 그냥 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고, 관두려고 했죠.

철호 중학교 야구선수 (포수)

5년간 매일 던져온 공입니다. 1, 2학년 때는 가끔 그러다가도 괜찮아지곤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3학년에 들어오면서 —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지면서 — 더 이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까지 갔습니다. 압박감이 커지자 자신의 동작과 실수에 대해 의식하는 자의식이 함께 높아졌고, 동작을 통제하려고 더 애쓰게 됩니다. 그런데 자의식이 높아질수록 동작의 세부 과정 하나하나에 주의가 쏠리고, 그럴수록 이미 자동화되어 있던 기술이 오히려 풀려버립니다(Masters et al., 1993). 잘 해보려고 애쓸수록 결과는 더 나빠지는 — 입스가 가진 또 하나의 역설입니다.

철호와 같은 야구 종목의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어떤 투수는 공을 던지려 하면 "누가 뒤에서 손을 잡고 놔주지 않는 것 같아" 던질 수 없다고 했고, 또 다른 투수는 공을 던질 때마다 "손에 힘이 풀려서 놓치게" 되어 공이 땅으로 튀거나 공중으로 날아오른다고 했습니다. 표현은 달랐지만 본질은 한 가지였습니다. 몸이 뜻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야구선수의 경우 저학년 때는 가끔 일어나던 문제가, 부담감이 증가하는 고학년이 되거나 스카우터가 지켜보는 경기를 앞두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패턴이 자주 보였습니다.

골프 종목에서는 같은 운동제어의 어려움이 갑작스런 근육경련이나 경직 — 즉 입스(yips)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골프선수 NY가 들려준 퍼팅 장면은 이러했습니다.

퍼터를 하는데 이게 되게 짧은 거리였어요. 한손으로 쳐도 들어갈 거리. 연습 때도 그냥 대충 쳐도 들어가는 거린데 시합가면 왼쪽 어깨가 경직이 돼서 몸이 생각대로 안 움직이는 거죠. 그냥 막혀있어요. 그러다 겨우 치기는 하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안 가는 거죠. 왼쪽 어깨가 안 움직이게 되니까 헤드가 열리면서 막 딴대로 가요. 그럴 때는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요.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를 아예 모르겠어요. 연습 때는 괜찮은데 시합 때는 매번 그래요.

NY 골프선수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를 아예 모르겠다." 이것이 입스를 겪는 선수가 도달하는 가장 깊은 무력감의 자리입니다. 연습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의지가 약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시합만 가면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펜싱선수 민지도 "동작을 이상하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웃을 것 같다"는 자의식 때문에, 펜싱에 결정적인 순발력과 반응속도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연습은 충분합니다. 의지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시합에서 몸이 응답하지 않습니다. — 이 말이 의미하는 절망의 깊이는, 그 자리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05
SCENE 05

책을 읽고, 절에 가고, 마인드컨트롤을 했지만

운동선수 입스 자력 극복 시도 — 책 읽기, 마인드컨트롤, 이미지트레이닝

이 정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만히 있을 선수는 없습니다. 9명 모두 상담실에 오기 전에 자력 극복을 시도했습니다. 그 시도들은 다양했습니다.

골프선수 제임스는 책과 온라인을 뒤졌습니다. 그가 들려준 절박함은 이러했습니다.

온라인을 찾아봤어요. 유튜브에 멘트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거 찾아보고, 책 같은 것도 읽어보고, 골프의 마음 그런 책도 사서 읽어보고, 여기저기 다 물어보고. 이게 답이 제대로 안 나옵니다. 아무리 책을 읽어봐도 답이 없었어요. 항상 생각했던 게 뭐냐면, 누가 이걸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제임스 19세 아마추어 골프선수

"누가 이걸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 이 말 한 줄에 입스를 겪는 선수의 외로움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일반적인 조언만 가득하고, 책은 자신의 상황에 맞지 않으며, 주변에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야구선수 철호는 코치 권유로 이미지트레이닝을 시도했습니다. "코치님이 해보라고 하셔가지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어요. 계속 제가 던지는 생각을 했죠. 연습 때 가까운 거리도 많이 던져보고. 그렇게 해도 연습 때도 가까운 거리는 다 안 던져졌어요." 권유받은 방법을 성실히 따랐지만, 그 방법조차 작동하지 않는 자리까지 와 있던 것입니다.

펜싱선수 민지와 축구선수 경민은 마인드컨트롤이라는 이름으로 의식적인 통제를 시도한 경우입니다. 민지는 "자신 있게 하려고 계속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해봤는데 한번 긴장하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 자체를 다 까먹어서"라고 했습니다. 경민은 "경기 들어가기 전에 자꾸 긴장 안하자고 저 혼자 스스로 계속 막 마인드컨트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도 똑같았던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시도는 더 다양했습니다. 어떤 선수는 절에 가서 마음을 풀어주는 것을 해봤다고 했고(골프 JM), 어떤 선수는 그저 더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고(골프 NY), 또 다른 선수는 예전에 실수했던 기억을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했습니다(골프 LY). 한 프로골프 선수는 10회 정도 심리상담을 받아본 경험도 있었습니다(골프 PH).

상담실에 들어선 9명 가운데, 자력으로 입스를 극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 9명이 박사학위 최면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9명 모두 의지가 강한 선수들이었습니다. 모두 자력 극복을 시도했고, 어떤 선수는 심리상담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의식 차원의 노력만으로 입스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의식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즉 무의식 차원에서 작동하는 어떤 메커니즘이 입스의 본질에 있습니다. 그 메커니즘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다루었는지가 본 시리즈의 다음 4편에서 이어집니다. 2편 「최면과의 첫 만남」에서 그 만남의 첫 장면을 시작하겠습니다.

PARTICIPANTS · 9명 선수 기본 정보

최면상담 연구 참여자

본 시리즈에 등장하는 9명 선수의 기본 정보입니다. 박사학위 연구(박준화, 2018) 표 18에서 발췌했으며, 모든 이름은 사전 동의를 얻고 사용된 가명입니다.

# 가명 성별 종목 연령 경력 인터뷰 시기
1민지펜싱19세5년처치 후 1개월
2경민축구19세7년처치 후 4개월
3철호야구16세5년처치 후 3개월
4제임스골프 (아마추어)19세12년처치 후 5개월
5NY골프 (아마추어)19세6년처치 후 2개월
6JM골프 (아마추어)19세5년처치 후 1개월
7MT골프 (프로)22세6년처치 후 2주
8LY골프 (프로)30세14년처치 후 2개월
9PH골프 (프로)22세9년처치 후 2주
참여자 요약 · 평균 연령 20.4세 (16~30세) · 평균 경력 7.7년 (5~14년) · 성별 남 6명, 여 3명 · 종목 구성 펜싱 1명, 축구 1명, 야구 1명, 골프 6명 (아마추어 3명, 프로 3명)
REFERENCE · 본 페이지 출처

박준화 (2018). 운동선수 수행붕괴 및 입스 개선에 대한 최면상담 효과 연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DBpia 원문 보기 →

본문 인용 문헌: Dienstbier (1989); Hill, Hanton, Matthews, & Fleming (2010, 2011); Jamieson et al. (2013); Lazarus (1973); Masters et al. (1993); Mesagno, Harvey, & Janelle (2012); Sachdev (1992); Williams et al. (2002); 이현우 (2006); 세계일보 (2013).

RESEARCH EVIDENCE
박사학위 연구 양적 근거
처치집단 25명 전체의 통계 데이터 보기
본 시리즈에서 다룬 9명 선수의 질적 사례 외에, 처치집단 25명과 비처치 통제집단 27명을 비교한 양적 분석 결과를 협회 메인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4가지 핵심 변인의 Before/After 그래프, 효과크기, 학술지 게재 정보 및 언론 보도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84%처치집단 호전률 (25명 중 21명)
η² .24~.60큰 효과 (large effect)
−47%처치 후 불안·몸 굳음·긴장 감소
+60%처치 후 자신감 증가
CLINICAL APPLICATION · 임상 적용 기관 안내

본 연구의 최면상담 임상 기법은 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에서 운동선수 입스·수행붕괴 상담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체인지 스포츠 최면 안내

Q&A /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

입스(yips)란 무엇인가요?

A.
갑작스런 근육경련이나 경직, 또는 자동화된 동작이 시합 상황에서 수행되지 않는 운동제어 문제를 가리킵니다. 학술 용어로 수행붕괴(choking under pressure)의 한 형태로 분류됩니다.
Q.

운동선수 입스는 얼마나 흔한가요?

A.
프로 골프선수의 30%가 입스로 선수 경력에 위협을 받고(Sachdev, 1992), 국내 아마추어 골프선수의 45%가 입스를 경험합니다(이현우, 2006).
Q.

운동선수 입스, 의지로 극복할 수 있나요?

A.
본 박사학위 연구에 참여한 9명의 선수 모두 책 읽기, 마인드컨트롤, 심리상담 등 자력 극복을 시도했으나 의식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입스의 본질은 무의식 차원의 반응 패턴에 있습니다.
AUTHOR · 저자
박준화 박사
박준화
심리학 박사
한국심리최면협회(KPCHA) 협회장

15년 이상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공황·입스 등 무의식 반응 문제를 신경가소성 원리에 기반해 분석하고 개선해 온 심리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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