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FIC ARCHIVE / 과학적 심리최면
최면에 들면 ‘걱정하는 뇌’가 조용해진다
Abstract / 핵심 요약
"최면은 잠들어 의식을 잃는 상태가 아니라, 주의가 한 점으로 좁혀지며 잡념이 잦아드는 깊은 집중 상태입니다. 흔히 최면에 들면 정신이 흐려질 것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걱정하던 부위가 오히려 잠잠해집니다. 이 변화는 느낌이 아니라 뇌 영상으로 측정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최면에 든 사람은 남의 눈치와 잡념에서 벗어나, 한곳에 더 또렷하게 몰입하게 됩니다."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하려 할수록, 잡생각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최면에 든 사람에게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정신이 흐려지기는커녕, 평소 시끄럽던 머릿속이 오히려 조용해집니다.
정신을 놓는다는 최면에서, 잡념이 도리어 가라앉습니다. 무엇을 억지로 누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 까닭은 잡념을 억누르는 힘에 있지 않습니다. 최면은 떠오르는 생각을 의지로 짓누르는 상태가 아니라, 주의가 한곳으로 모이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주의가 모일수록 다른 생각이 끼어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는 경보음
우리 머릿속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장치가 있습니다. 이게 맞나, 저건 괜찮나 하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일종의 경보음 같은 것입니다. 이 소리는 위험을 놓치지 않으려는 안전장치이지만, 평소에는 좀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책상 앞에서 잡생각이 그치지 않는 것도, 잠자리에서 걱정이 꼬리를 무는 것도 이 경보음이 계속 울리기 때문입니다.
최면에 들면, 이 경보음의 음량이 천천히 낮아집니다. 소리가 잦아들면 비로소 한 가지 일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생깁니다. 잡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잡념을 키우던 배경 소음이 작아지는 셈입니다.
최면에 든 뇌에서 실제로 줄어드는 활동
이 경보음은 비유가 아니라, 뇌 영상으로 확인된 실제 활동입니다. 데이비드 스피겔(David Spiegel)이 이끄는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최면에 든 뇌를 살폈습니다. 그 영상에서 배측 전대상피질(dACC)이라 불리는 부위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주변을 감시하고 무엇을 걱정할지 따지는 일을 맡는, 뇌의 걱정 회로입니다. 활동이 잦아들면 끊임없이 이어지던 자기 감시가 느슨해집니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가지 변화를 더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과, 잡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영역 사이의 연결이 헐거워졌습니다. 잡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마음이 자기 생각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곳입니다. 두 영역의 연결이 헐거워지면, 한곳에 몰입하면서도 잡생각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최면이 잡념을 가라앉히는 일은 이렇게 뇌의 변화로 설명됩니다.

조용해진 뇌는 실제 변화로 이어질까
뇌가 조용해진다는 것과, 그것이 실제 변화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물음에 임상 연구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의식적인 노력만으로는 다스리기 어려운 자동적인 반응을 최면으로 다룬 박준화(2018)의 임상 연구가 그 사례입니다. 경기만 시작되면 긴장과 잡념에 휩싸여, 수없이 연습한 동작이 갑자기 나오지 않는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잘하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그 순간이 오면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그 무너짐의 뿌리를, 의식적으로는 손이 닿지 않는 무의식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최면 안에서 그 뿌리를 차근차근 짚어 가자, 선수들의 수행에서 객관적으로 잴 수 있는 호전이 확인됐습니다. 의지의 힘으로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던 집중력이, 최면이 만든 또렷한 몰입 속에서 비로소 본래 자리를 되찾은 셈입니다.

정신을 놓는 게 아니라, 가장 또렷해지는 일
여기서 최면이 잡념을 가라앉히는 까닭이 분명해집니다. 평소 끊임없이 울리며 주의를 어지럽히던 경보음이 잦아들면, 흩어졌던 주의가 한곳으로 모일 자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때 최면 상태에서는 평소 비판적인 생각에 막히던 새 관점을, 무의식이 한결 쉽게 받아들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도권은 끝까지 본인에게 있습니다. 최면은 정신을 누군가에게 내맡기는 일이 아니라, 원치 않는 암시는 거절하면서 내 의지로 들어가는 깊은 집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면은 정신을 흐리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잡념에 묻혀 있던 집중을 되찾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머릿속이 조용해진 그 자리에서, 우리는 평소보다 더 또렷하게 한 가지에 마음을 모으게 됩니다.
참고 자료 및 언론 보도
이와 관련한 실전 임상 솔루션은 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의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며, 최면의 과학적 원리에 관한 박준화 박사의 연구와 관점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학술 근거
- Jiang, H., White, M. P., Greicius, M. D., Waelde, L. C., & Spiegel, D. (2017). Brain Activity and Functional Connectivity Associated with Hypnosis. Cerebral Cortex, 27(8), 4083–4093. https://doi.org/10.1093/cercor/bhw220
- 박준화 (2018).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언론 보도
- 에듀동아 — 신경가소성 관련 보도
- 메디컬투데이 — 공황장애 관련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