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FIC ARCHIVE / 공황장애-불안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란? 일반 공황장애와 다른 병일까
Abstract / 핵심 요약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는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별개의 병이 아니라, 오래 쌓인 긴장이 무의식에 자동 반응으로 새겨져 예고 없이 터지는 공황장애입니다. 들어온 계기가 스트레스였을 뿐, 도착한 자리는 일반 공황장애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잡아도 이 반응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의식이 판단을 내리기 전에 무의식이 먼저 스위치를 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복의 열쇠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만 있지 않고, 긴장이 자동 반응으로 굳어 버린 그 자리를 다시 다루는 데 있습니다."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라는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순간에 발작이 온다고 짐작하기 쉽습니다. 야근이 몰아치는 한복판, 시험을 코앞에 둔 밤 같은 때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발작은 오히려 그 고비가 지나간 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순간에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주말에 소파에 앉아 쉬다가, 버스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심장이 내달리는 식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같은 의문에 부딪힙니다. 스트레스받을 때도 아닌데 왜 터지는 걸까. 이건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라는 특별한 병일까, 아니면 그냥 공황장애일까.
답은 분명합니다.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는 따로 존재하는 병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는 발작을 당긴 방아쇠였을 뿐, 그 뿌리는 일반 공황장애와 같은 자리에 닿아 있습니다. 오래 쌓인 긴장이 무의식에 자동 반응으로 새겨졌고, 스트레스는 그 반응이 튀어나오도록 계기를 준 것뿐입니다.

들어온 문은 달라도, 도착한 방은 같다
공황발작이라는 상태를 하나의 방이라고 해 보겠습니다. 그 방에는 들어가는 문이 여럿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극심한 스트레스라는 문으로 들어오고, 어떤 사람은 카페인이나 수면 부족이라는 문으로 들어옵니다. 뚜렷한 계기 없이 들어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은 저마다 다르지만, 열고 들어선 방은 똑같습니다. 심장이 내달리고 숨이 막히고 곧 큰일이 날 것 같은, 그 공황의 방입니다.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은 이 여러 문 가운데 스트레스라는 문 하나를 강조한 이름일 뿐입니다. 방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의학에서도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를 일반 공황장애와 따로 나눠 진단하지 않습니다. 둘은 같은 공황장애이고, 눈에 띄는 계기가 스트레스냐 아니냐가 다를 뿐입니다.
다만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을 처음 겪는다면, 먼저 병원에서 심장이나 갑상선 같은 신체 질환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는데도 발작이 되풀이된다면, 그때 살펴볼 곳은 몸 바깥이 아니라 무의식입니다.

위험이 없는데 몸이 먼저 싸울 태세를 갖추는 이유
이 자동 반응의 뿌리에는 우리 몸의 아주 오래된 생존 장치가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이 장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생리학자 월터 캐넌(Walter Cannon)은 1915년, 위협 앞에서 몸이 순식간에 대비 태세로 바뀌는 반응을 밝혔습니다. 맞서 싸우거나 달아나도록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근육에 힘을 몰아주는, 이른바 투쟁-도피 반응입니다. 뒷날 연구자들은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탰습니다. 도저히 싸울 수도 달아날 수도 없을 때는 몸이 그대로 얼어붙는다는 것입니다(Schauer & Elbert, 2010). 그래서 오늘날에는 이를 투쟁-도피-경직 반응이라 부릅니다.
이 장치는 원래 맹수 앞에서 목숨을 구하려고 켜지던 것입니다. 문제는 스트레스입니다. 위협이 오래 이어지면 이 장치가 켜진 채 좀처럼 꺼지지 않습니다. 계속 켜져 있으면 몸은 사소한 신호에도 과민해지고, 나중에는 맹수도 위험도 없는 평범한 순간에 저 혼자 작동해 버립니다. 잘못된 순간에 울리는 생존 장치의 오작동, 이것이 공황발작의 정체입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이 오작동은 우리가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반복된 긴장이 무의식에 “이런 상황은 위험하다”는 신호로 새겨지고, 그 신호가 의식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몸으로 곧장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뇌가 켜는 이 생존 반응과 무의식에 새겨진 자동 반응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같은 현상의 두 얼굴입니다. 스트레스성 공황장애의 발작이 의지로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무의식 자동반응이 의식보다 먼저 작동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굳어 버린 반응도 다시 풀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오래 쌓여 굳어 버린 자동 반응은 영영 그대로 남을까요. 임상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박준화(2018)의 임상 연구에서 그 가능성이 확인됩니다. 연구 대상은 운동선수였습니다. 압박이 닥치면 실력이 무너지던 선수들을 두고, 그 무너짐의 무의식적 뿌리를 최면으로 따라 들어가 다뤘습니다. 변화는 도움을 받지 않은 집단과 견주어 검증했습니다. 그 결과, 무의식에 자리 잡은 자동 반응은 뿌리가 다뤄지자 달라졌습니다.
이 원리는 공황에도 그대로 옮겨 붙습니다. 압박 앞에서 무너지는 반응이든, 스트레스 끝에 터지는 공황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자극을 위협으로 묶어 두는 곳은 둘 다 같은 무의식입니다. 그 위협을 몸이 배우고 자동 반응으로 새기는 과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때 최면은 의식을 잃고 잠드는 상태가 아닙니다. 깨어 있으면서도 평소엔 손닿지 않던 무의식의 층까지 내려가, 그곳에 깊이 몰입하는 상태입니다. 그 자리에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새로 입히면, 몸은 위험하지도 않은 순간에 헛된 경보를 울리던 버릇을 조금씩 놓아 갑니다.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
여기까지 오면 회복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무의식에 자동 반응으로 새겨진 자리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저절로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자리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뇌의 신경 연결은 경험에 따라 다시 이어질 수 있어, 한번 굳은 반응도 새 반응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신경가소성).
공황장애 치료의 뼈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곤두선 신경을 진정시키는 약물치료이고, 다른 하나는 사소한 신호를 큰일로 부풀리는 사고 습관을 바로잡는 인지행동치료(CBT)입니다. 이 둘이 표준으로 자리 잡은 치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마음먹기로는 손대기 힘든 무의식 자동반응을 풀어 가는 방법으로 심리최면이 나란히 활용되기도 합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로 모입니다.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는 스트레스가 만든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오래 쌓인 긴장이 무의식에 자동 반응으로 굳어, 위험이 없는 순간에도 저 혼자 작동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그 방을 빠져나오는 길은 스트레스라는 문 하나를 막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방을 여닫는 스위치가 새겨진 무의식의 자리를 다시 다루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끝에 찾아온 그 발작은, 당신이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무언가를 견디고 버텨 온 몸이 더는 못 견디겠다고 보낸 신호입니다. 손봐야 할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아닙니다. 오래 켜진 채 꺼질 줄 몰랐던, 무의식 속 그 스위치 하나입니다.
Reference / Media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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