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FIC ARCHIVE / 과학적 심리최면
최면 감수성, 정말 결정적인 변수일까?
Abstract / 핵심 요약
"최면 감수성은 누구는 최면이 잘되고, 누구는 잘 되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되어 온 개념입니다. 다만 최근 최면 유도 기법이 발달하면서, 감수성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대부분의 사람을 깊은 최면 상태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본 칼럼은 그 변화의 의미를 박준화(2018)의 운동선수 대상 연구 결과와 함께 살펴봅니다."
‘최면 감수성’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같은 최면사가 같은 방식으로 안내를 해도, 어떤 사람은 빠르게 깊은 최면 상태로 들어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표면에서만 머무르거나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차이를 보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런 개인차를 ‘최면 감수성(hypnotic susceptibility)’이라고 부릅니다. 의지가 약하거나 마음이 흔들려서 생기는 차이가 아니라, 사람마다 가진 일종의 인지적·신경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학계 입장입니다.

이 감수성은 한동안 최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로 다루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오랫동안 최면 유도의 표준 방식은 ‘점진적 이완법’이었다는 점입니다. 몸의 긴장을 발끝부터 머리까지 천천히 풀어주며 15~20분에 걸쳐 최면 상태로 안내하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이 방식은 모두에게 똑같이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리 없이 깊이 들어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좀처럼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임상 현장에서는 “누가 최면에 잘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미리 가려내는 일이 중요해졌고, 이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감수성 척도가 개발되었습니다. 195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만든 척도가 그 출발점이었고,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변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변화는 1960년대에 시작됩니다. 미국의 의료최면사 데이브 엘먼(Dave Elman, 1964)이 점진적 이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급속 최면 유도법을 체계화한 것입니다. 엘먼 유도법은 이완을 길게 끌고 가지 않습니다. 대신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하기, 깊이를 단계적으로 쌓아 올리기, 분석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하기 등으로 짧은 시간 안에 피험자를 깊은 최면으로 유도합니다.
엘먼 유도법을 적용하면 평균 3~10분이면 깊은 최면 상태로 안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점진적 이완법으로는 잘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도 깊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의료·치과 분야의 마취와 통증 관리에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의미 변화가 일어납니다. 점진적 이완법이 주류였을 때는 사람마다 최면에 들어가는 차이가 컸기 때문에 감수성을 미리 가려내는 일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수성에 덜 의존하는 유도 기법이 자리잡으면서, ‘누가 잘 들어가고 누가 못 들어가는가’를 구분하는 일 자체의 비중이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감수성은 사람의 고정된 한계라기보다, 어떤 기법을 쓰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이 달라지는 변수에 가깝다는 사실이 임상에서 점차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박준화(2018) 박사논문이 이를 임상 연구로 검증한 바 있습니다. 입스(yips)나 수행붕괴(choking under pressure)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운동선수 27명에게 엘먼 계열 유도 기법을 국내 실정에 맞게 수정해 적용한 결과, 평균 약 10분 안에 96.3%가 깊은 최면 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점진적 이완법에서는 표본의 일부만이 깊은 상태에 도달한다는 점을 함께 놓고 보면, 의미 있는 결과입니다.
결국 임상에서 더 의미 있는 질문은 “이 사람이 최면이 잘 되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어떤 기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입니다. 최면 감수성이라는 개인차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치료 가능성의 한계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도구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다른 깊이가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ference / Media Report
본 칼럼의 근거가 된 박준화 박사의 연구는 주요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된 바 있습니다.